와인 한잔
1977년 11월
맘는 오늘도 거실에서 와인을 한잔하고 있다.
난 숙제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집중을 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 가신지 6년.
난 중학교 3학년이 됐고 맘는 커피숍을 그런대로 잘 운영하신 듯하다.
맘는 미인형의 얼굴에 아직도 날씬하게 몸매를 유지해서 주위의 지인들이 재혼하라고 성화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나 맘는 모든 유혹을 거절하고 오직 나 하나만을 키우며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그런 맘의 와인 마시기는 6개월 전부터 시작 됐다.
오랫동안 참았던 맘의 지조는 그날 마신 술로 너무도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
6개월 전 가게가 쉬는 날 맘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나를 앉혀 놓고 38년의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을 말하며 또다시 와인을 한참동안 마셨다.
난 그런 맘가 안쓰러워 오랜만에 맘의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잠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할 때쯤 난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맘의 손을 느꼈다.
그 손놀림은 평소의 맘와는 다른 이상한 것이었다.
맘는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는 듯했는데도 손놀림은 뭔가를 찾듯이 나의 자지로 향했다.
난 맘의 손놀림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맘의 손에 사정을 했다.
사실 나도 요즘의 아이들처럼 성이 무엇인지도 알고 섹스가 무엇인지도 잘 안다.
물론 자위 행위도 중 2때부터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자지를 애무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나의 사정 후에도 맘의 애무는 멈추지 않았다.
맘는 정액이 잔뜩 묻은 손으로 계속 나의 자지를 흔들었다.
맘가 품어내는 술 냄새는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고 난 다시 발기했다.
흥분한 난 자신도 모르게 맘의 보지를 만졌고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맘의 보지구멍을 찔렀다.
맘는 숨이 넘어가는 신음 소리를 계속 내지르며 온몸을 꼬았는데 난 난생 처음으로 겪는 여자의 몸에 심취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팬티가 벗겨진 맘의 몸 위로 올라가서 자지를 잡고 맘의 보지구멍을 찾았다.
맘는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기다렸단 듯이 나의 자지를 빨아 들였다.
난 맘의 몸 위에서 하체를 연신 앞 뒤로 왕복하며 자지로 맘의 보지구멍을 가득 채웠다.
16세의 건강한 몸은 지칠 줄을 몰랐고 난 맘의 몸 위에서 1시간을 넘게 머물러 있었다.
맘의 보지는 3번에 걸친 나의 사정으로 정액이 넘쳐 흘렀지만 나를 계속 끌어 당기며 자신의 보지 속으로 향하게 했다.
다음 날 내가 일어났을 때도 맘는 자고 있었는데 벌려진 맘의 두 다리 사이에는 아직도 나의 정액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보지가 벌겋게 열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이불을 걷어 찬 채로 자고 있는 맘의 옆에 난 하체를 다 드러내 놓고 한참을 서있었다.
그리고 그때 맘의 잠이 깨어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맘는 계속 자는 척 했고 다시 발기한 나의 자지를 잡고 난 다시 맘의 배위로 올라갔다.
이미 잘 익어있는 맘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다시 밀어 넣고 정액이 다시 나오기까지 한참을 찔러댔다.
햇빛이 들어 환한 맘의 방에서는 맘의 숨넘어가는 신음 소리와 살과 살이 맞닿는 야릇한 울림이 아침을 음탕하게 젖었었다.
그날 난 아침식사도 거르고 학교에 등교했다.
그날 밤 맘를 다시 볼 때까지 난 엄청난 혼란 속에서 지냈는데 다시 평상의 모습으로 돌아 온 맘를 보고서 그 혼란스러움은 비밀 속으로 갈무리 되어 지는 듯했다.
서로가 약간은 외면하는 듯한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맘의 휴일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밥을 뜨는 맘의 홍조 띤 얼굴은 그날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맘의 자책어린 반성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왔다.
맘는 식사하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나도 그랬다.
그 후 나의 자위행위의 대상은 맘가 되어있었고 상상 속에서 난 수없이 맘를 탐했다.
그런데 난 내 자신이 유독 맘의 보지에만 집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당하게 부어 오른 맘의 가슴이나 입술은 전혀 관심이 가질 않았다
다른 어떤 상상보다 그날 내가 본 맘의 보지만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맘가 잠든 후 난 몰래 맘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곤하게 잠든 맘를 내려다 보다가 난 참지 못하고 살며시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맘의 보지에 손을 댔다.
잠옷 위로 보지 털의 감촉을 느끼며 조금씩 밑으로 이동할 때 맘가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맘의 손이 나의 손을 밀더니 돌아 누워 버렸다.
난 너무도 놀라고 당혹스러워 얼른 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자위행위로 엄청나 양의 정액을 토해내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잠이 들었다.
맘는 그 사건에 대해서도 일절 말이 없어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섭섭하고 서운한 느낌도 들었다.
더 이상 맘의 보지를 볼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 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간듯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내가 자위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난 어느날.
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하고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방으로 들어와 옷을 모두 벗고는 잠든 나의 옆에 누웠다.
난 잠결에 “맘”하고 불렀다.
그러자 맘는
“오늘은 술 먹었으니까 여기서 자야 겠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맘의 살이 나의 손등에 닿았지만 난 감히 손을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자 맘의 손이 나의 팬티 속으로 들어 왔다.
잠 들기 전에 이미 자위행위로 한차례 거나하게 사정했던 나의 자지는 다시 너무도 단단하게 발기해 올랐고 난 긴장해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자지를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그날의 그 느낌은 난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처음으로 느낀 여자 입의 그 따뜻하고 경이로운 감각…
맘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토하며 나의 자지를 빨았다.
난 금방 사정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긴장했는데 맘는 일어나더니 나의 하체 위로 엉거주춤 기어올라 왔다.
그리고 나의 자지를 잡고 자신의 보지 구멍에 맞추어 끼워 넣었다.
맘는 갑자기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자지를 끼운 체로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난 맘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참지 못하고 보지 속에다 정액을 토해버렸다.
맘는 환희에 찬 숨을 내쉬더니 다시 나의 자지를 빨기 시작 했고 난 다시 발기해 버렸다.
그러자 맘는 다시 나의 위로 올라왔다.
긴 시간… 맘와 나의 섹스는 길었다.
그리고 집요했다. 특히 맘가 더 그랬던 것 같다.
맘는 나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정액을 다 뽑아내야 성이 찰 듯이 그렇게 나의 자지를, 나의 정액을 탐냈다.
다음 날 아침 역시 난 맘보다 먼저 일어나 이불을 걷어내고 맘의 두 다리를 벌려 놓고 한동안 맘의 보지를 감상했다.
그러나 전날의 무리는 발기에 약간의 지장이 있었다.
난 손으로 자극해 억지로 자지를 깨웠다. 그리고 맘의 배위로 올라가 보지구멍에 자지를 끼웠다.
그날 아침 내가 정액을 토해내기 까지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맘는 이상한 신음을 토하며 기다려 주었다.
아침을 먹는 것도 등교시간을 맞추는 것도 힘들 정도로 우리의 아침은 무척이나 길고 음탕했지만 난 너무도 행복해서 그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물론 난 즐거운 지각을 했다.
그 뒤로 맘의 술 마시기는 더욱 잦아졌지만 먹는 양은 갈수록 줄어 들었다.
언젠가 부터 맘는 집에서 와인을 마신다.
그리고 와인을 마신 날 맘는 마신 양에 관계 없이 술에 취한다.
그러면 맘는 아주 야한 여자가 된다.
어디에서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는 않은 체로 다리를 벌리고 나의 자지를 유혹한다.
그러면 난 참지 못하고 발정기의 수캐처럼 맘의 보지를 채워 버린다.
나의 자위행위는 이제 중지 되었다.
정확하게 그럴 시간이 없어졌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자지도 검은 빛이 도는 포르노 배우처럼 바뀌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맘가 신음하며 말한
“이 씨 집안은 자지가 큰 것이 전통인가 봐”
그것처럼 술 취한 맘는 나의 어린 자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하다.
한번은 맘의 가게에서 갑자기 맘의 보지가 보고 싶었다.
난 와인을 소주잔에 따라서 맘에게 마시라고 했다.
맘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더니 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취해 버렸다.
난 맘를 화장실로 데려가 보지구멍에 자지를 맞추고는 정액을 채워 버렸다.
그날 맘는 술이 깨기 전에 씹 물과 정액이 잔뜩 묻은 나의 자지를 빨며 말했다.
“이 자지 맛은 왜 이리도 좋아서 나를 매일 취하게 하지?”
난 너무도 바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제 맘는 매일 와인을 마신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난 맘가 맨 정신일 때를 본지가 너무 오래된 듯하다.
난 아주 행복하다.
이제 숙제가 거의 끝내지고 있다.
마음이 급하다. 자지는 이미 돌 같이 발기해 있는데…
맘의 보지는 자금쯤 나를 기다리며 촉촉이 젖어 있을 것이다.
1984년 2월 17일
23살이 된 지금 맘는 45세가 되었다.
난 지금 군복무중이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제대를 한다.
맘는 아마도 나를 손꼽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못 만난 지가 어느덧 2달이 되어간다.
난 이런 저런 핑계로 맘의 면회를 만류해왔다.
제대하는 날 맘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한 나의 계획 때문이었다.
군복무 기간에도 맘는 1주일이 멀다 하고 면회를 왔다.
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맘의 젊어지기 위한 노력은 대단하다.
각종 운동과 식이 요법은 아직도 여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맘의 필살기 인지도 모른다.
암튼 맘는 아직도 젊고 예쁘게 보인다.
맘는 나에 대한 정성도 대단하다.
난 벌써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자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내가 보기에도 거대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맘의 보지는 자꾸만 크는 나의 자지를 느끼며 환희의 신음을 토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우리는 강원도 설악산 밑에 작은 산장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의 맘가게는 대리인을 내세워 장사를 하고 있는데 산장은 성수기 이외에는 바쁘지가 않아서 여유로운 나날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맘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 였다.
산속 조용한 산장은 우리의 세상이었다..
난 고1때부터 맘와 한 침대를 썼다.
특별히 제작한 침대는 맘의, 아니 우리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6년 동안 맘와 나의 sex 횟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맘는 나에게 좋은 음식과 약을 계속 먹도록 하였다.
입대 전까지 우리는 거의 하루도 거르질 않고 sex를 했다.
그러나 내가 군에 입대한 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별을 하게 되고 내가 근무하는 지역이 강원도 여서 맘의 면회는 거의 주말마다 이어졌었다.
이제 며칠 뒤면 난 다시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난 2달 전에 자지에 특별한 수술을 하였다.
울퉁불퉁한 모양의 실리콘 이 물질을 삽입해서 가뜩이나 큰 자지를 괴물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귀두 밑으로 울퉁불퉁한 요철이 뿌리까지 나사처럼 돌아가며 내려간다.
산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워낙 큰 나의 자지는 웅장한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겼다.
수술한 의사는 너무 커서 sex가 불가능 하다고 말렸지만 난 결혼 했기에 괜찮다고 의사를 설득했다.
며칠 전 보지가 크기로 유명하다던 이슬다방 심 양과의 테스트에서 효과를 실감했었다.
심 양의 보지는 정말 컸다.
나의 자지를 보더니 처음엔 놀라서 안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가 나중에 한번 들어가나 나 보자고 동의 했다.
물론 심 양의 보지는 나의 자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몇 번의 왕복 운동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녀 말에 의하면 그런 느낌은 처음 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 또 보자는 그녀의 부탁을 웃음으로 넘기며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떡였다.
맘의 음탕한 보지가 너무도 보고 싶다.
나의 자지는 다시 용수철처럼 늘어나고 있다.
1984년 2월 19일
맘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얼굴이 발갛게 홍조를 띄고 운전을 하고 있다.
내가 제대한다고 사단 사령부 앞에서 3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입이 벌려졌다.
식사를 하고 가자는 맘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피곤하다며 집으로 바로 가기를 주장했다.
깊은 산속의 산장은 비수기라서 조용하고 아늑했다.
맘는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3일 휴가를 주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맘는 그 동안의 변화에 대하여 쉴새 없이 떠들어 댔다.
난 거실의 소파에 기대 앉아 분주하게 오가는 맘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 보았다.
45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날씬하고 육감적인 몸이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지만 그래도 역시 어려보이는 얼굴, 아마도 나 같은 어린 아들과 살아서, 그리고 나의 신선한 정액을 계속 공급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맘의 모습을 바라보다 음탕한 보지를 떠올렸다.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자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커지기 시작했다.
용수철이 늘어나는 느낌.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물질의 팽창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맘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한번 보게. 내 보지.”
난 마루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맘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맘는 약간의 치기어린 반항을 했지만 순순히 나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따랐다.
난 팬티까지 벗기고 맘의 두 다리를 크게 벌렸다.
맘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엉덩이를 바깥 쪽으로 밀어내고 두 다리를 벌려 나의 눈앞으로 습기찬 보지를 들이 밀었다.
“예뻐?”
“응. 정말 맛있게 생겼다.”
살짝 벌려진 보지는 벌써 씹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열기를 품고 있다.
난 한 손으로 보지를 움켜 잡았다가 풀며 보지를 크게 돌렸다.
손바닥에 씹 물이 물처럼 묻어났다.
자지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난 입을 가져가 보지를 빨았다.
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커다란 신음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보지 이곳 저곳을 빨아대자 맘의 반응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나의 혀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때는 온몸을 움찔거리며 괴성을 질렀다.
어느덧 맘는 소파에 거의 누워서 하복부를 천정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난 조심스럽게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자지가 강하게 위쪽으로 퉁겨 올라왔다.
맘의 몸 위로 올라가 자지를 잡고 귀두를 보지 구멍에 맞추었다.
맘는 두 손으로 소파를 움켜지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흐려진 초점 아래로 강한 욕망이 이글거렸다.
난 온몸으로 자지를 밀어 보지 속으로 들여 보냈다.
‘ 드르륵.’
그런 느낌이 맞을 거다.
나의 자지는 맘의 보지구멍 속으로 요란한 자극을 울리며 전진했다.
맘의 보지는 더욱 커진 나의 자지로 인해 거의 찢어질 듯이 늘어나며 보지 주변의 늘어진 살들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듯이 몰려 들었다.
입구를 지나자 덜꺽하며 질 벽이 느껴졌다.
많이 늘어난 보지지만 갑자기 커진 나의 자지는 질 내부를 가득 채우며 밀고 들어갔다.
“ 으~억.”
맘는 괴성을 길게 내며 두 손으로 나의 앞가슴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의 자지가 계속 전진하자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마치 가래가 끊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자지가 보지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박히자 난 가만히 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맘 나의 선물이야.”
그리고는 허리를 움직여 자지를 천천히 왕복운동 시켰다.
“ 드르륵~ 드르륵…”
마치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이 자지에서 보지전체로 퍼져 나갔다.
맘는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는 눈을 허옇게 뒤집었다.
몇 번의 왕복이 지났을 무렵에 난 맘의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러나 난 멈추지 않고 빠르게 다시 느리게를 반복하며 맘의 보지를 유린했다.
약 10분 동안 맘는 거의 수 십번에 걸친 발작을 했다.
내가 정액을 쏘아 낼 때쯤 맘는 “그만..그만..”을 작게 신음처럼 이빨사이로 흘려내었다.
사정 후 난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며 맘를 보았다.
담배를 다 필 때까지도 맘는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가끔씩 움찔거렸다.
보지아래쪽 소파는 마치 물을 쏟은 듯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보지에선 뭉클뭉클 거리며 나의 정액인지, 맘의 씹 물인지, 농도 진한 액체가 계속 흘러내렸다.
내가 보지에 손가락을 대자 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잠깐”이라는 소리를 짧게 외쳤다.
담배를 피고 나서 난 다시 자지를 세웠다.
아니 자지는 이미 발기해 있었다.
아무 말도 않고 맘의 배 위로 다시 올라 갔다.
맘는 두 손으로 나의 가슴을 밀며 힘없이 말했다.
“아, 안돼. 그만. 지금은… 지금은…”
그러나 밀어내는 두 팔에 서 힘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난 아직도 끈적한 액체가 몽실몽실 흘러내리는 맘의 보지구멍에 자지를 맞추고 힘껏 박아 넣었다.
부드럽지만 뻑뻑하게 나의 자지는 보지 깊숙이 들어가 강하게 벽을 두드렸다.
맘는 숨넘어가는 괴성을 이빨사이로 흘려내며 나를 껴안았다.
나의 왕복운동이 시작되고 맘의 몸이 진동처럼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맘는 정신을 잃었다.
난 그제서야 자지를 빼고 맘를 자유롭게 하여 주었다.
그리고 맘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맘의 몸이 아직도 가늘게 떨고 있었다.
특히 벌려진 다리 사이의 보지구멍도 움찔거리며 씹 물이 틀림없을 액체를 연신 흘려내고 있었다.
난 그 옛날처럼 자지를 드러내 놓고 맘의 보지를 내려다 보았다.
나의 자지는 맘의 씹 물을 잔뜩 뒤집어 쓴 채로 당당하게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참기로 했다.
벌써 가혹하게 맘의 보지를 유린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난 자지를 잡고 맘의 보지를 보며 자위행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액을 맘의 보지에 뿜어내었다.
우리는 그리고 새벽까지 잠을 잤다.
잠결에 맘가 자지를 잡으며 나의 품에 안기는 것을 느꼈다.
옛날처럼…
그러나 난 긴장하지도 그런 맘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냥 여유롭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맘는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맘는 너무도 자극적인 쾌감이 오히려 고통처럼 느껴져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오르가즘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어기적거리며 뒷물을 하러 가는 맘의 모습을 보며 난 한참을 웃었다.
아마도 그건 만족에 겨운 승자의 웃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의 자지를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더 이상의 sex는 불가능했다.
맘의 보지가 정상이 아니었다.
맘는 엄청나게 커진 나의 자지를 잡고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단지 한입에 자지를 빨 수 없는 것이 걱정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행복한 귀향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1986년 11월
꿈 같은 나날들이다.
나는 25살이 되었고 맘는 47세가 되었다.
되 살아난 경기로 인해서 사업이 번창하여 산장을 크게 증축했다.
서울의 커피전문점도 관리하는 친척과 동업하여 체인화 하였다.
그래서 난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산장 뒤쪽 산중간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우리는 그곳에서 지낸다.
그 동안 우리는 완전한 부부가 되었다.
맘가 딸을 낳은 것이다.
맘를 닮아서 무척이나 예쁘다.
난 우리 관계의 특이성 때문에 출산을 반대하였지만 맘는 간절하게 바랐다.
아이로 인해서 우리 관계가 완전해 진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올 때부터 맘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출산할 때까지 강릉까지 왕복하며 병원을 다녔고 맘는 몇 달을 강릉에서 지내며 몸조리를 하였다.
출생신고는 맘의 딸이며 나의 꼬맹이으로 되었지만 엄연한 나의 딸이었다.
나중에 복잡한 일이 생길 것이 염려되었지만 당장 맘가 너무 좋아하니까 만족이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중국에서 왔다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맘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지만 한동안 맘는 무척이나 바쁘게 지냈다.
사람들은 맘가 양녀를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 또 한가지가 늘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그 동안 sex를 거의 못하고 지냈다.
출산 후에도 한동안은 마찬가지 였다.
특히 일하는 아주머니가 와 있는 낮 동안은 무척 불편했다.
최근 들어서 맘는 다시 밤이 되기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되었다.
맘의 보지는 출산 후에도 여전히 왕성한 성욕을 유지 했는데 힘이 조금 부치는 듯도 해서 난 조심스러웠다.
한 달에 반은 서울에서 지내는데 그 기간동안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기 때문에 산장에 와 있는 동안은 맘의 넘치는 성욕을 받아 주어야 했다.
맘는 밤마다 두 다리를 벌고 나의 자지를 원했다.
엄청나게 커진 자지지만 맘의 보지는 완전하게 적응하여 자유롭게 sex를 할 수 있다.
나의 정액은 50을 바라보는 맘의 보지구멍 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돌아 다니고 있다.
우리 딸도 이제 곧 2살이다.
행복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