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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초목구부(草木俱腐)

totogun 0 83

초목구부(草木俱腐) 

 

초목구부(草木俱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윤서는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민기의 삐삐가 어떤 패턴을 갖고, 주기를 유지하고 있질 않나 하는 기우를 해본 적이 있었다. 배우자를 의심하는 행태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를 찾는 병원의 업무 자세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노동력 착취라고 보기에는 좀 별스런 구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일과 어느 정도의 사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불문율이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얼굴 대할 시간조차 빡빡한 나머지, 오늘 같은 섹스는 그야말로 일년에 한 두번, 가뭄에 콩 나듯이 있을 수 있는, 헤프닝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일컬음에 있어서, 너무 건조한 것으로 폄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고……

‘후아!’

민기가 현관을 닫는 소리와 함께 온 몸으로 덮쳐드는 그 야리야리한 노곤함.....가랭이를 양쪽으로 뻐개질 듯이 벌려 재끼고, 민기의 그 튼실한 좇대가리에 보지를 끼워 맞춰, 위에서 내리쳐 박아댄 탓에, 아직도 치골이 얼얼했다. 그 사이로 두 다리가 움씰 거리면서, 고양이 기지개 켜듯이, 타고 흐르는 쭈삣한 지리리함….섹스 후의 그런 느낌들이 윤서는 좋았다. 그리고, 바로 눈꺼풀이 무거워 지면서 밀려드는 졸음. 민기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이런 상태로 잠이 들다간, 아마 꿈도 꾸지 않은 채로 아침이 될 듯 싶었다. 그냥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별로 나쁘진 않아.’

윤서는 맨 처음, 민기를 만났을 때와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불만스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고, 그다지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생활의 걱정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이긴 해도, 서로의 섹스가 시들지 않는 그 상태를 본다면, 자신의 결혼이 그렇게 졸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기는 자신에게 너무도 당당했었다. 여느 누구처럼 열쇠가 몇 개, 예단은 얼마이상 같은, 너저분한 조건을 던진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마담 뚜를 통해, 집요한 손길을 뻗친 것도 아니었다. 딱 한번, 그것도 우울했던 그 당시, 기분전환 겸, 친구들과 떼사리로 몰려 갔던 극장에서, 우연찮게 옆 자리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었고, 그로 인해 만남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갖고 있던 의사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거두어가던, 그의 순수함에 반했다는 것이, 솔직한 그녀의 마음이다.

‘윤서야, 너 내 생활비 쫌 책임져라.’

‘뭔 놈의 뜬금없는 멘트?’

‘내가 그랬잖니? 난 돈도, 빽도, 줄도 없어서, 뉘기들 처럼, 골라가며 처갓덕 보기는 이미 글른 놈이라고 말이야.’

‘근데?’

‘대학병원에 남아 있으려면, 졸나리 대가리 굴리고, 이리저리 눈칫밥에, 정치전선 줄나래비 등등…게다가 월급은 또 월매나 짠지, 내가 얘기 했었쥐?’

‘그랬지. 이른바 빛 좋은 개살구 라고 니 입으로 그랬잖어?’

‘그래서 결심 했는데…..’

‘넌 절대 결심 같은 거, 하지마세여! 그냥 그래 살다 가시지, 왜?’

‘어허, 오빠가 담화 발표 허시는데, 겐세이는? 잘 들어 봐! 니가 병원 차려 줄 노다지 호구가 아닌 건 분명허니, 어쩌겠니? 지대로 태어나 생겨먹은 요 대가리로, 맨땅에 해띵 하면서리, 버텨볼 밖에….그러니, 니가 모자라는 생활비를 쫌 대야 쓰겄다 이 말이쥐….’

‘내가 니 생활비를 왜 대는데? 너 혹시 의사 사칭하고 댕기는 사기전과에다, 혼빙쎅쓔 때리는 열나 구린 애아버지 아니니?’

‘얘가, 얘가? 이게 바로 현대식 프로포우즈 란 거 아니니? 귓구녕은 폼으로 달고 댕기남?’

그 프로포우즈라는 단어에 윤서는 가가대소를 털었다. 뜻하지 않은 평범한 장소에서 민기가 들이댄, 그 쌩뚱맞은 결혼의사 타진은 정말 웃기는 헤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생활비의 대부분은 윤서의 몫이자, 짐인 채 였다. 그 놈의 전공 서적에, 봐야할 책들은 왜 그리도 비싼 것인지, 민기가 받아 쥐는 월급은 그저, 밥이나 사먹고, 급할 때 택시나 타고 다닐 수 있었으며, 품위 유지에나 적합한 액수 였을 뿐, 생활에 보탬은 되질 못했다.

언제나 입버릇 처럼, 이젠 의사가 3D직종중의 으뜸이라고 투덜 대면서, 마지막에 사짜가 붙는 다른 직종으로 심지를 박을 껄, 괜시리 대가리 앞세우며, 남들이 똥꾸녕에 바람 호호 불어주는 덕택에 자뻑쪼로 어깨 힘주다가니, 의사질로 발이 빠진 자신이, 그렇게 미련 스러워 보일 수 없다는 민기의 부연 설명이 항상 가슴에 와닿곤 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뚜쟁이 손길에 이끌려, 의사라고 하면 물불 안가리고 들러붙던 다른, 심봉사급 동창들의 그렇고 그런 파경 소식을 접할 때마다, 오히려 민기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 지 복이라는 자위를, 서슴없이 해대던 윤서 이기도 했기에 말이다.

‘나 완전 착하쥐?’

‘뭐가?’

‘혼수 더 해내라고 볶아치기를 해, 그렇다고 병원 차려 달라고 눈을 내리깔어, 친정 식구들, 소 닭 보듯이 섭섭하게 대하길 해, 암튼 나 같은 인물도 없잖수? 게다가 인물이 빠지길 해, 좇대가리가 물렁 고무신이야, 아님 섹슈를 못해? 이거 이거, 대단한 킹카 아니겄어여? 받들고 살아야쥐, 암!’

‘너나 그 주체 못하고, 맨날 벌떡 서 있는 좇대가리나 받들고 사세여, 예? 닥터 강! 내 참, 오냐 오냐 하니깐두루, 이젠 지 자랑에 눈이 돌아가서 흰자위 밖에 안 보이는 거 알고는 계시남? 지금까지 뭘로 먹고, 그 용은 쓰셨는지, 아주 까맣게 까쳐 드셨져?’

‘밥 먹고 힘 썼쥐, 그럼 내가 보지털 삼키며 용 썼을까봐?’

항상, 과도한 업무와 스케쥴, 게다가 군대 빰치는 상하간 율도에 의거한, 쪼인타에, 원산폭격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담당 교수의 따까리 질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보이는 구석이 없음으로 해서, 지치고 파곤죽이 될만도 한, 그였을 것인대도, 그는 항상 윤서의 예상을 각개격파로 부수어 가며, 그 자랑스런 뻘좇을 아주 많이, 그것도 자주 들이댄 것이 사실 이었다.

‘자기야, 피곤 하지도 않어?’

‘피곤 하긴, 하루라도 젊을 적에, 완전 뽕을 뽑아야쥐, 하루에 삼만원, 삼만원 인데, 이걸 그냥 하수구로 내보내남? 난 그렇겐 못허쥐!’

‘아니나 달라? 괜히 뻘좇이라고 했을까 봐.’

‘왜 뻘좇이 어때서?’

바닷가 살던 짠물이 서울 올라와 흰까운 걸치고 출세했다며 을러대면서, 항상 자신의 물건을 뻘좇이라고 지칭하던 그였다. 밀물일 때는 그게 그 밑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물이 빠져 나가고 나면, 끝이 없이 펼쳐진, 진흙 투성이 처럼 보이긴 해도, 뻘 이야말로 먹을 게, 돈 벌 게 천지라는 그의 비유…..그러나, 시간의 한계로 인해, 뻘에 정신을 빼고 있다가는, 은근슬쩍 밀치며 다시금 잠겨드는 밀물에 갇혀,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뼈있는 발언으로 그녀를 긴장시켰던 그 뻘좇….. 윤서는 세상에 그런 뻘좇은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하다가, 울리는 핸폰에 잠이 화들짝 깨고 말았다.

‘여보세여? 이 야심한 새벽에 왜 잠 안자고 전화질 이세여? 걸려면 전번이나 뵈지 않게 걸든가…..’

그 전화는 선우팀장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괜찮아. 지금 병원으로 막 나갔어. 왜? 너 제정신이니? 뽀록이락두 나면 어쩌려구? 여편네 께서는 잠도 안 쳐자시나?’

그러나, 전화를 받던 윤서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면서, 핸폰을 목과 어깨에 끼운 채로, 부리나케 옷을 입어대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알았다구……통화 감이 왜 이래? 지금 운전 하고 있니?......’

아마도 그 선우팀장 이라는 인물은 이 야심하다는 시각에 차 안에서, 그것도 이동중에 윤서를 향해, 전화를 날린 모양 이었다.

‘응…..응…..뭐라구? 잘 안들려….응…이제 들려……아파트가 보인다구?....응….응…다 왔네…난 다 챙겼어…..또 뭐?.....걸어서 내려오라는 말은 또 뭐야?...’

윤서는 습관처럼 구두를 신으려다가, 반드시 운동화나 조깅화를 신고, 발소리 죽여가며, 계단을 통해 신속하게 내려오라는 그의 부탁을 상기했다. 어깨에 맨 핸드백과 손에 든 컴터 서류가방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현관을 나서려다, 그의 말대로 윤서는 급한 김에 휘갈기는 글씨로 민기만 보라는 듯이, 메모를 쓴 뒤에 냉장고에 자석 악세사리로 보기 좋은 자리에 그걸 부착해 놓고 나왔다. 급하게 서두른 것으로 인해, 그 사이에 흘러간 시간은 바로 민기를 뒤쫓아 내려가는 정도의 시간밖에 소모하질 않은 걸 알게 되었다.

한 밤중에 집을 비우게 되어, 혹시라도 민기가 돌아와 앞 집에 물어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윤서는 늦은 시각 이기는 했어도, 앞 집 여자에게 무언가 언질을 주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는 손을 겨우 들어, 앞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사이, 다시 끊어졌던 전화가 윤서에게 날아왔다. 잠이 깊이 들었는지, 아니면, 초인종 소리를 듣고 옷을 챙겨 입는지,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지하 주차장 B2층에 머물러 있던 승강기가 우웅하면서 올라와, 1층에 잠시 머무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 닥치고 있었다.

‘어떡하지?’

초인종은 이미 눌러 놓았고, 앞집의 문은 열리질 않았지만, 승강기는 제 속도를 유지하면서, 15층을 향하고 있어, 윤서는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어서, 전화기 폴더를 접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어쩔 수 없이 앞 집 여자도 만나지 못한 채로, 계단을 뛰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층계를 반 쯤 내려오는 사이, 머리 위에서 아파트 문이 철커텅 하면서 열리는 소리와 승강기가 멈추어 문이 열리는 소음이 동시에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무언가 투닥거리는 소음과 함께, 들렸어야 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그녀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었고, 입술에서는 핏기가 가셔지고 있었으며, 가슴이 마구 떨려오기도 했다. 다행히 입구에 계셔야 할 경비 아저씨가 안 보이고 있었다. 아마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시려고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차가 나가는 저 멀리 입구 쪽에 눈에 익은 하얀 승용차가 불빛을 번쩍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때마침, 차를 향해 달려 가는 사이, 자신이 뛰어가는 방향과 반대편 아파트 구석에서 지하주차장을 통해 지상으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민기의 차 앞부분이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자기야. 미안해…..제발 몸 조심하고…..’

차가 뺴곡하게 주차되어 있는 길을 따라, 민기의 차가 중간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감속을 위한 둔덕을 몇개 지나는 동안 지체될 시간을 감안 하면서, 윤서는 팀장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멀리서 울럭대며, 둔덕을 지나치다 멈추어 선 민기의 차를 바라보며, 자신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실로 인해, 윤서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하늘에게 감사의 마음을 돌렸다. 차는 타이어의 공회전으로 인한 연기까지 뿜어대면서 그 자리를 바람 같이 빠져 나갔다. 차는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주택가의 놀이터 앞에 멈추어 섰다.

‘담배 한대 만 피우자.’

차에서 내리는 남자의 손 끝이 떨리고 있는 것을 윤서는 같이 내려, 마주 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게 사실이야?’

‘휴…..’

남자는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 보며, 대답 없이 연기만을 날려 보냈다.

‘그럼, 이제까지 진행하던 것을 몽조리 챙겨 나오라고 한 게, 그거 때문이냐구?’

‘윤서야……큰일났다. 우리가 아무래도 잘못 건드린 거 같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다지도 황당하게 집에서 튀어 나오라고 하면 어떡해? 만일에 민기씨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어찌 될뻔 했냐구? 지금 이게 설명이 제대로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난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도…. 그 시간에 전화를 받고…….. 어찌할 바를 몰랐거든.’

‘누구한테서?’

‘몰라!’

‘몰라? 그건 또 무슨 해괴망칙한 발언?’

집에서 빠져 나오기 전과 달리, 질문은 바로 기세의 역전으로 바뀌고 있었다.

‘목소리가 변조된 채로 들려왔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었다구. 사투리라도 썼다면 기억에라도 있을텐데, 아주 정확한 발음이었어.’

‘뭐라고 했는데?’

‘그저 무식하고, 눈에 뵈는 게 도통 없는 사람들이, 자기를 건드린 년을 찾아 가고 있으니, 앞으로 잘 하라는 내용 이었구……그 밖에는 별다른…..난 직감적으로 윤서, 너를 해치우러 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 나에게 직접 사람을 보내지 않고, 경고성으로 전화를 흘린 걸 보면, 우리 사이에 누가 기선을 쥐고서 일을 처리했는가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니?’

‘…….’

윤서도 팀장의 해석에는 뭐라고 답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옆에 집사람이 잠이 들려 하던 차였는데, 뭐라고 내색할 수가 있어야지. 그냥, 죽었습니다 하면서 네, 네 하다가 끊었지. 그리고 나서 옷 갈아입고 집에서 튀어 나와 차 몰면서 바로 전화 때린 거야. 시간적인 여유고 뭐고가 전혀 없었다니깐?’

‘그럼, 앞으로 어쩐다지?......담배 하나만 더 줘봐.’

윤서는 속이 타는지 줄담배를 태웠다. 그리고 양미간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는 그녀…..일이 잘 안 풀릴때나 골치거리가 있을 때, 곧잘 하는 윤서의 버릇 이었다.

‘어제 그 데이타를 긁어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남자의 후회가 이어졌다. 둘 사이에서 벌어져 오고 있던 일은 액면 그대로 해석한다면, 윤서 혼자서 이끌어 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동안, 윤서와 팀장은 긴밀한 연락과 보안을 통해 그 껀수를 고이고이 지켜왔던 것으로 보였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퍼진다면 어떡해? 어제 긁어 낸 데이타가 회사 서버랑, 갖고 온 내 컴터에 그대로 실려 있구, 살펴보고 뒤져 보아야 할 구석이 어디 한 두 군데 라야지. 이건 관련 되어 있는 옷자락이 하나 둘이 아닌 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그건 그렇다쳐도, 사람 목숨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인물처럼 들렸는데, 만일에 내가 연락 않하고 윤서가 지금 이 시간까지, 그대로 집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 지, 상상이 가니? 나야 윤서 니가 하자는 대로 서버의 임의 사용 허가 내주고, 곁에서 지켜만 본 죄로 이렇게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데, 만일에 나까지 그 데이타에 깊숙히 관련 되었다면, 아마 전화도 때리기 전에 너 죽고, 나도 자빠뜨려 졌을 거야.’

‘자기 그렇게 발뺌 하면서 겁쟁이 노릇 헐래? 우리가 첨부터 이런 위험도 모르면서 덤벼 들었을까? 내가 시스템 치고 들어가기 전에, 보지는 그만 쑤셔대고, 화면 쫌 보라고 자기한테 똑똑히 물었잖아? 이제 시작한다고….만일에 자기도 겁이 오지기리 났다면, 그때 나를 말렸어야쥐…말린다고 들을 나도 아니었겠지만서도…..휴…..’

갑갑한 모양인지, 윤서는 입에 침을 튀어 가면서까지 열변을 토하다가,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말을 끊었다. 등을 대고 돌아선 윤서를 뒤에서 가만히 껴 안는 팀장….먼지 털어 내듯이,어깨를 뿌리치다가 윤서도 이내 잠잠해 진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구. 나도 이제까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그 위험을 몰랐을까봐? 너를 그렇게 전쟁터의 한 복판으로 내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가 같이 가자고 손을 들었겠느냐구? 알아? 내가 그저 니 몸뚱아리 하나, 탐이 나서리, 설레발이나 풀고 다니는 유부남으로 보이니? 아니야…..그건 정말 아니야…’

‘그럼 뭔데? 뭔데 이렇게나 비겁해?’

‘그건 비겁한 게 아니야. 널 아끼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어떤 것도 댈 수 없는 걸…..’

‘제일루 내가 싫어 하는 게 뭔지 알지? 제일 보수적이고 보편적인 뻐꾸기로, 발목 잡히지 않을 멘트나 날려대는 유부남들의 뺀질거림이야, 알아? 아껴? 뭘 아껴? 나랑 같이 사무실에서 밤 늦도록 쑤셔박고, 빨아줄 적에는 아마 홍콩이 아니라 마카오까지 갔다 왔겠지…..내가 왜 자기를 이 일에 끼워 넣은지, 알아?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게라도 내 몸뚱아리로, 자기를 향해 호미걸이라도 하지 않은 다음에야, 나 하나 죽어 자빠진들 누가 알겠어? 나 인정할 껀 해. 자기랑 섹스하고, 뒹굴면서 확실히 뻑이 갔던 거 인정해. 모르는 바 아니라구.’

‘그러다 우리 둘다 죽을 수도 있어….윤서야! 정신차려. 상대는 우리가 짐작조차 못하는 놈들이라구.’

‘선우현석 팀장님, 잘 들으시와요! 이름없이, 제대로 까보지도 못하고, 냄새나는 속내의 한번 들췄다고, 하루살이 처럼 잡혀서 썩어 문드러져 뒤진다구? 그게 겁이나? 겁 나냐구? 난 죽을 때 죽더라도 꽥소리 한번 치고 죽을란다, 왜? 안돼?’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바뀐 듯한, 팀장과 윤서의 대화는 거의 고함에 가까왔다.

‘진정하고, 목소리 좀 낮 춰, 이 동네 사람들, 우리들이 소리지르는 통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구?’

‘신고 하래지, 이젠 그깟 것도 겁나니?’

남자는 키와 체격만큼 호탕한 성격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길고 하얀 손가락이 말해 주듯이, 그 남자는 윤서의 활달한 성격에 보조를 맞추어 주면서, 조용히 그녀 주위를 맴도는, 그런 타입으로 보이고 있었고, 그의 앞에서 군림하는 듯한 자신의 태도로 인해, 스스로의 만족도와 지배의식을 높여온 듯한 윤서와의 지나온 과거가 조금은 엿보이는 듯도 했다. 주객이 전도된 듯, 윤서는 남자를 다구치기 일 쑤였던 것으로 보였고, 남자는 그런 그녀의 성격에 매료된 듯 했다.

‘우선 우리 어디 조용한 곳으로자리를 좀 옮기자.’

그때, 팀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자기야? 자다말고 왠 전화? 응…..별일 아니야…..서버가 또 따운 인가 봐. 미스 민이 지금 시스템을 점검 중이라서, 사내 전화로는 받을 수 없어서 그랬을 거야. 서버는 나 이외에 건드릴 줄 아는 사람이 미스 민 밖에 없잖아?.....응…..응…..나두…….둘이서 지금 완전 똥오줌 못 가리면서 하기스 차고 있다......그럼….졸려서 미치겠어……응….응….걱정 붙들어 매셔. 사내에 눈이 몇갠데….참, 지금은 경비 서는 사람들 밖엔 없지…..그래도 그렇지, 착한 남편을 어따가 취직을 시키남….응…그래…..그래….알았어…알았어……옷 갈아 입으러 들어갈께….응…응…나두….나두…..꼭 그걸 얘기 해야 아남? 그래,……사랑해…..쪽쪽쪽쪽….’

‘딸깍.’

‘지랄하고 있네!’

윤서의 심사가 무척 뒤틀린 모양 이었다. 일상적으로 전화기에다 대고 사랑 어쩌구, 뽀뽀 어쩌구 하는 짓거리를 쑤셔대며, 박아대는 도중에도 수시로 목격 했던 윤서건만, 이번 만큼은 그의 행동이 우스꽝 스럽고 비린내 나게 보이고 있는 모양 이었다.

‘사랑?....오호라! 그렇게나 마나님을 사랑하시는데, 나 같은 무연고자를 어찌 구하시려고, 백마의 기사로 나서 주셨남?’

‘비꼬지 마. 난 진심이야. 윤서도 결혼 생활 하고 있으니까 알 거 아냐?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랑, 남편을 그리워 하는 맘이 같아?..... 그래?...... 아닐 껄! 그건 엄연히 달라. 같다고 하는 게 더 이상 한 거야.’

‘내가 같다고 하면, 이혼이락두 하실 요량이세여? 이거 왜 이러셔! 너나 잘 하세여.’

그 때였다. 두 사람의 전화기가 동시에, 그것도 한치의 간격도 없이, 놀랍게도 자신들이 저장해 놓지 않은 벨소리로 울려왔다. 서로 얼굴을 바라다 보며, 액정을 살펴 보았지만, 뜨는 전번은 없었다. 두 사람은 눈짓을 나누면서 동시에 핸폰의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나, 두 사람이 더 놀란 것은, 동시 생방송 처럼, 윤서의 전화기에도, 현석의 전화기에도 동일한 목소리가 녹음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비교라도 하려는 것처럼 전화기를 서로의 귀에 대주면서, 전화기를 통해 흘러 나오는 그 변조 되었다는 목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히히히……역시, 두 분 다 대단하시네. 눈에 뵈는 게 없는 아그들을 그렇듯 쉽사리 따돌리시다니….애꿎은 젊은 년 하나만, 바닥에 떨어져 쨔부 됐잖어? 그 대가를 어떻게 갚으실라나? 도둑질도 액수 확인은 그 날 바로 안 한다며? 내일 아침 뉴스나 보면 된다고 누가 그러대. 내일 아침 뉴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잼날 껄? 히히히….어디까지 도망 가실 수 있나 지켜볼까나? 사냥꾼의 심정을 알랑가 몰라….낄낄낄낄’

변조된 그 웃음소리는 아주 섬뜩하리만치 기분이 드러웠다. 전화가 끊어지고, 뚜뚜하는 통화 정지음이 들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폴더를 접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제서야 윤서는 집을 잠그고 나오지 않은 것이 생각나고 있었으며, 어디로든 숨고나면, 남겨진 민기가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땅거미처럼 번져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후……’

현석이의 긴 한숨…그건 막막한 심정의 일갈이기도 했다.

‘어디 갈데라도…..있어?’

윤서는 이미 마음이 다져진 모양인 듯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과거에 연연해 하질 않는 그녀의 깎아 놓은 듯한 성깔…..현석의 느릿한 발걸음을 기다리지도 않고, 차에 먼저 올라타는 윤서의 표정이 비장하리만치 굳어 있다.

‘어디로 간다지?’

핸들 위에 손을 올려 놓고도 갈피를 잡질 못하는 현석의 팔을 슬며시 잡아주는 그녀……고개를 돌리지도 않고서,

‘거기로 가자. 우리 워크샵 가면서, 뚫어 놨던 그 곳 알지? 거긴 아직 괜찮을 거야. 날이 밝는대로 어떻게든 그 곳에서 주변 상황이라도 수습하면서 머릴 짜 보지 뭐.’

‘그럴까?’

‘참, 아까 핸폰에서 나오던 벨소리, 자기가 다운 받았던 거니?’

‘아니! 나도 그게 쫌 그렇드만. 어떻게 다운 받지도 않은 벨소리로 전화가 올 수 있지? 핸폰 기능 중에 우리가 모르는 게 있나?’

‘핸폰 줘봐.’

그 자리를 뜨자고 하던 윤서가 차의 실내등을 켜고, 자신의 핸폰과 현석의 핸폰을 같이 양 손에 들고, 가만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놀란듯이, 배터리를 빼는 것이 아닌가?

‘어서 빨리!, 여기서 벗어 나야 돼. 어서 빨리….좇나게 밟어!’

‘왜 그래?’

차가 급발진을 통해, 조용하기만 하던 주택가의 놀이터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사라져가기 시작하자, 윤서는 분리해낸 배터리와 핸폰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넣어 버렸다.

‘아까 눈치 깠어야 하는데…….., 우린 전화기를 켜 놓고 있으면서, 추적 당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 위치가 벌써 그자들 손아귀에 들어갔을 꺼고, 나에게 왔다던, 눈깔에 뵈는 게 없다는 인간들이 우릴 족치려고 달려오는 중이었을 꺼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주택가 한복판 이라고 해도 개활지에서는 수신감도를 표시하는 바가 그렇듯 움직거릴 이유가 없거든. 그것도 자기 꺼랑, 내꺼가 동시에 짜 맞춘 것처럼….아주 귀신 같은 놈들이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전화기를 타고 들어와서, 벨소리 세팅까지 바꿀 줄 아는 막강한 자슥들…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구…..’

‘윤서야….난 자꾸 겁이 난다. 넌 아무렇지도 않니? 남편 걱정은 조금치도 않하는 거야?’

‘민기씨는 걱정 안해. 솔직히 말한다면 걱정이야 되긴 하지만, 전쟁나도 죽지 않는 세 사람중에 한 사람이 의사인 거 몰라? 적군이든 아군이든, 어느 상황, 어느 순간에서건 의사는 필요해. 죽이기야 하겠어? 영문도 모르는 철없는 유부남을…..’

차를 모는 현석은 이런 혼란스런 와중에도 자신을 비롯해서 남편 마저도 추스릴 줄 아는 당돌한 그녀의 옆모습조차 우러러 보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할 일들이 태산 처럼 밀려있는데, 찍소리도 없이 당하고 뒈지기엔 세상이 너무 재미 있어, 안 그래?’

윤서의 되뇌임을 운전을 하면서 듣고있는 현석의 머리칼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 이었다. 그 어느 상황에서고 결코 흔들림이 없는 여자…..그는 그녀의 그런 면이 평소,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었는지, 의아스럴 뿐이었다.

‘왜? 자기는 겁나? 무서워 죽겠어? 세상에 이름도 없이 죽어가란 법은 없다고 봐. 그 자가 그랬잖아? 낼 아침 뉴스에 내 얘기가 나올 거라구? 그래, 이제 시작이지….. 기냥 가는 거야! 그자가 선빵으로 내 턱을 보기좋게 올려 부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야, 나에겐 그들의 목을 틀어 쥘 수 있는 꺼리가 한까뜩 이거덩! 자기야, 겁 먹지마. 가족들은 별 일 없을 꺼야. 우리의 얘기가 물 위로 부상하면, 섣불리 주변 사람들을 건드린다든가 하는 또라이 짓은 하질 않을 테니 말이야. 한번은 주목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광고에서 그랬던가? 그래, 그게 이제부터 우리가 될꺼야. 뻘좇 마나님의 무서운 맛을 한번 보여 줘야 하고 말고…..본때 있게 한판 붙어야쥐. 누가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밤이 새벽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고 해도, 해가 쉽사리 뜰 것 같지 않다고 느낀 것은 현석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서의 서슬 덕택에, 현석 마저도 맘만 먹으면 해쯤이야, 그 까이꺼 라는 용기가 생기는 것으로 인해, 자신이 남자 이면서도, 여자인 윤서가 그리도 든든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고 여겼다. 도심과 별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거진 숲과 산길로 접어드는 그 팬션의 안내판이 보이고 있었고, 이제 거의 다 와 간다는 말을 하려고 옆을 돌아다 보았을 때, 이미 윤서는 혼잣말을 한 지, 20여분도 되질 않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현석은 보게 되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눅눅하고 뜨끈한 습기가 느껴졌다. 그건 잔뜩 긴장한 채로, 위험 속을 헤쳐 나왔다는 조명탄 같은 거 였다. 호기 넘치게 외쳐 보기는 했어도, 내심 그녀 스스로의 다짐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지, 역시 속은 현석 자신이 알고 있는, 가녀린 여인의 본성, 그 자체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그런 연약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잠든 얼굴……차를 멈추고서도 한참이나 현석은 잠든 윤서의 얼굴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막막함은 자신들의 일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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