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백 2
나의 독백 2
10년의 기억- 이번 4월이 되면 꼭 10년이 된다. 이제는 먼 기억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희미한 잔상처럼 또렷하지도 않지만 10년이나 된줄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1994년. 그해의 봄은 유난히도 따사로왔고, 아마도 그녀를 만났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유부남이었고 그녀도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던 시절. 지금은 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으리라고 믿고싶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열병처럼 가슴을 후벼파고 지나갔고… 지금처럼 불륜이 PC방의 숫자만큼이나 많지 않았으며, 욕망을 빌미로 정당화 될 수도 없었던 까끌스럽던 두사람 이었다.
10년. 그녀의 이름은 A. 아직까지 그녀의 생년월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단지 1년반정도였지만 나는 그녀의 사는 모습까지 모두 내 기억속에 뺴곡히 간직하고 있다.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나를 이용하고 있었는지 몰랐느냐고 소리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A는 눈이 맑았다. 그 눈이 비스름하니 쳐지면서 섹스에 취할때면 요염함을 넘어서서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A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당시 드물게도 카드빚에 몰리던 그녀가 나를 찾아왔을때, 정말 나는 여자에 대해서 무식한 나뭇군과 다를바 없었다. A와 두번째로 섹스하던밤, A는 모텔에서 술에 너무취해 섹스도중에 정신을 잃었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카드빚으로 내게 울면서 매달렸던 이유를 알았고… 확연히 보이던 그녀의 회음부를 가로지르는 상처. 그것은 개월 수를 넘긴 임신중절의 결과였다. 중절이 되질 않아 아이를 태내에서 죽이고 아이를 낳듯이 뱉어냈다는 그녀의 고백… 공부중인 대학생을 사랑한 그녀. 서로가 사랑해서 몸을 섞고, 그로인해 무지한 가운데 생긴 임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카드빚으로 수술비를 마련했고… 그래서 그녀는 나를 찾았던 것이다. A는 그래도 한사코 그 남자를 사랑했다. 그 남자의 학비며, 졸업에 필요한 여러가지 비용들을 그녀는 나와의 섹스를 통해 엿바꿔 먹듯이 나에게서 나오는 돈을 그 남자에게 바쳤다. 나도 알고 있었고,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영원히 알 수 없도록 지금은 그녀가 그녀의 사랑으로 그 모든 비밀을 막고 있을 테니… 그녀의 어려움은 어느날, 받은 전화한통에서 알게되었다.
강남의 지하철역에서 걸려온 전화. ‘저, 000되십니까? 여기 00역 역무실인데요, A양이 빈혈로 쓰러져서 여기 의무실에 누워있습니다. 명함에 선생님 성함이 있길래 전화드렸습니다. 보호자되시면 오셔야 하겠는데요…’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나는 한걸음에 차를 몰고 역으로 내달았다. 의무실에 누워있던 그녀. 창백한 얼굴에 야전침대에 이불도 없이 누워 있던 그녀의 쭉 뻣은 두 다리는 정말 기억에도 새롭다. 나는 역무원이 시키는대로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며 그녀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있어서 마음만 먹었다면 온갖 부위를 주물러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정신이 빨리 돌아오질 않는 그녀가 안쓰러워 정신없이 팔과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다리를 연신 주무르고 있었고… 정신이 든 그녀는 빈혈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강남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에게 데려다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었다.
그녀의 빈혈. 그것은 수술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까놓기 시작했다. -2부:멍청이와 소프라노 여가수- 카드빚을 갚아준 뒤에 나는 나도 모르는 멍청한 꿈에 빠졌었다. 결혼하기로 한 애인이 있는 A를 사랑하는 꿈. 6개월이 넘도록 나는 그 단꿈에 젖어서 A와 가까워지는 나날들이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빚을 벗어던진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되돌아왔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언젠가 일요일 오후, 밀린 잔업으로 그녀와 나는 만났고, 그날 그녀는 차를 타고 달리고 싶다고 했다. 자유로를 돌아서 강북 강변도로로 오는길에 잠든 그녀의 모습보다, 나는 그녀의 맨살의 각선미에 정신이 아뜩 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녀는 나의 시선을 즐기면서 다리를 조금 벌리기까지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한다. …멍청한 자식….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와 금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술을 먹었다.
시간은 화실과도 같이 흘러 나와 그녀는 망년회를 맞이한다. 그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폭탄주도 서슴없이 마시던 그녀. 나는 정신없이 취했고, 서로가 아무런 대화없이 강남의 큰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큰 호텔이 처음이라며,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할때도 옆에 붙어서서 신기한 듯이 바라보던 그녀를 잊기는 정말 힘들었었다.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그녀는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강남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를 껴앉았다. 키스를 하려했지만 키스는 안된다고 하는 그녀의 행동에서 나는 그당시 프리티우먼의 쥴리아 로버츠가 생각났었다. 얇은 스웨터를 벗기고 다시 하얀 블라우스를 벗기고 청바지를 내렸을 때, 그녀는 침대로 들어가자고 하며, 나를 이끌었다. 브레지어가 풀리고 그녀의 소담스러운 젖무덤이 드러났을때, 나는 유두가 거의 없는 유방을 보게된다. 이런 젖꼭지는 바람이 잘난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하고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녀의 팬티를 내렸다.
씻지도 않은 그녀의 음부. 고약한 냄새가 날것으로 예상한 나의 기대와 달리 희미한 지린내만이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서로가 취기로 인해서 애무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삽입과 반복, 그리고 경련…. 그래도 나는 그녀의 배위에 사정을 했다. 그녀는 그것이 고맙다고 했다. 무엇이 고맙다는 말이었는지… 그렇게 그녀와의 첫 섹스는 정신없이 끝이났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다가 나는 침대곁에서 다시 그녀의 바지를 벗겼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이번에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리를 활짝 벌리던 그녀, 그녀의 신음소리는 독특했다. 높은 하이톤으로 대답을 끄는듯한 그 신음소리… 나는 한동안 그녀의 신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던 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3부:반복과 습관, 어느것이 더 나쁠까?- 나는 그 다음날 그녀가 결근을 한 것을 알았다. 걱정 반, 기대 반에 나는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냥 쓸쓸한 웃음으로 어제의 일은 취기때문이었다고 못을 박던 그녀. 나는 저녁이 되기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신천역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어려운 삶의 체취가 묻어나던 그 집. 나는 손에 들고간 과일이 부끄러웠다.
과일보다는 돈이 더욱 나을뻔했었는데… 나는 화장을 지운 그녀의 밋밋한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옷안에 가리워져 볼 수 없었던 그녀의 풍만한 히프도 레깅스를 입은 그녀의 수수한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방안에 동그라니 놓여있던 그녀와 그남자의 사진… 나는 그 남자가 밉기보다는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남자인지 부럽기만 했다. 방문을 닫고서 나는 그녀를 껴안고는 그녀의 젖을 쥐어짜듯이 주물렀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몸이 아파 회사를 나갈 수 없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했다. 나는 그녀의 스웨터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젖무덤을 말아쥐고 한손으로는 그녀의 둔덕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 톤은 변화가 없었다.
그녀의 귓불을 사정없이 빨고 있었는데도 그녀는 별다를 반응을 전화에 보이질 않았다. 그녀와 나는 그 남자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밀회를 시작하게 되고… 집에는 별별 이유를 다대야 했고, 그녀도 역시 애인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야 만 했다. 거기에 다가 그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애인이상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옷을 사주고, 같이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원조교제도 그런 원조교제가 없었다. 그녀는 멍청한 나의 지갑에서 끊임없이 그 남자를 위한 돈을 타내었고… 그러나,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아마도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고 등록금에 걱정을 하던 그녀가 결심을 한 날로 기억된다. 그때가 두번째 그녀와 섹스한 날이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먼저 술을 먹으러 가자고 나를 졸랐었다. 언제나처럼 신천역에서 내려서 우리는 로바다야끼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횟집에 갔다.
내옆에 앉아서 술을 마시던 그녀가 온돌방의 바닥이 따스하다며, 탁자밑으로 다리를 쭉뻣었다. 항상 입고다니는 미니스커트가 그녀의 풍만한 힢으로 인해서 조금 말려 올라간 모습을 나는 내려다 보았다. ‘엉덩이가 너무 크죠?, 다리는 어때요?’ 하면서 그녀는 치마를 약간 들어 올렸다. 발갛게 홍조를 띤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듯이 눈을 응시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대신 나가자고 눈짓을 건넸다. 우리는 신천의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모텔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취기가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모텔에 들어서서 그녀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나즈막하게 말했다. ‘돈이 필요해요. 그것도 많이, 등록금이…’ 나는 그녀의 말을 입으로 막아버렸다. 그녀는 뿌리치질 않았다. 그 남자를 위해 취기를 동원하면서까지 나를 불러낸 그녀. 키스를 허락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천사를 본 듯했다. 둘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욕실로 데려가서 그녀의 온몸을 정성을 다해 닦아주었다. 비누거품과 함께. 그녀는 두번째이긴 하지만 나에게 오랄을 해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럴 것까지 없다고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나의 아랫도리에 매달렸다.
한참을 있다보니 그녀는 내 아랫도리를 붙잡은채, 잠이 들어 있었다. 술에 취해 고혹스런 자태로 널부러진 그녀. 나는 섹스하다말고 그녀의 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회음부에 길게 나있는 상처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술에 취해 누워있는 그녀를 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처럼 디카에다 캠이라도 흔한 시절이라면 아마도 그 모습을 찍어놓았을 것인데… 나는 그녀가 일어날때까지 기다렸지만 일어나질 않았다. 스타킹에서부터 나는 차근차근 옷을 입혀나갔다. 밤을 그런식으로 지샐 수는 없었다. 옷을 다 입히고 코트까지 입힌 뒤에 나는 그녀를 업고 모텔을 나왔다. 추운 겨울바람으로 인해서 그녀는 바짝 내등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집에 다 와서야 택시안에서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코트주머니에 그녀가 말한 그돈을 넣어두는 것도 잊질 않았다. 그때는 내일도, 모레도 이처럼 그녀와 살을 섞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랬었다.
그녀와의 사이에 묘하게 자리잡은 섹스와 연민의 중간 감정들… 나는 그래도 그녀와의 이런 삶을 놓칠 수 없노라고 곱씹었었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그런… -4부:후회와 미움사이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섹스를 통해 알게된 그녀의 사생활은 굴곡, 그 자체였다. 그 남자를 만나기전, 그녀는 두어번 정도의 섹스를 경험했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모르고 있지만… 한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알바청년이 그것이었고, 나머지는 교회의 합창단에서 있다가 소개받아 일하게 된 어느 가구공장 사장이었던 장로가 그 두번째였다고 했다. 그 두가지 모두 그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의 남자를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기억은 자신의 등을 기어가는 송충이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녀. 그래도 그녀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내가 빨고 있는 음부에서 물을 연신 흘리고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이제 중간과정이 점차 생략되고 있었다. 서로의 기분을 돋우기 위한 술도 필요없었고, 그저 창녀와 고객처럼, 그녀와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섹스하고, 또 섹스하고, 또 섹스하고…. 그러던 중, 그녀의 남자는 졸업을 하고, 더 이상 그녀가 나에게 손을 벌려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 그때에 그녀는 서서히 나를 떠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영원히 안기기 위해 그녀는 나에게 보듬었던 날개를 접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날 그녀는 말없이 달랑 사직서를 한장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삐삐의 번호도 바꾸고, 연락은 두절되고, 집앞에서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질 않고… 나자신도 이것은 미련한 짓이며, 스토커나 하는 짓이라고 자위하면서도 마약같이 내몸을 휘감는 그녀의 살결이 잊을 수 없어 또다시 그녀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갈겨댔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타났다. 그래도 인사는 남겨야 한다고… 둘은 예전처럼 신천역의 유흥가 골목에 들어섰다. ‘왜 그랬니?’ 나는 조용하게 물었다. ‘아시잖아요?…우리 둘…계속된다고 무어가 달라지죠?’ 그 말은 맞았다. 애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내가 그녀와 더 이상 무엇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도피성 섹스? 아니면 쾌락지향주의의 실현? 서로가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서로의 몸을 탐하는 것이 끝이나고 서로의 집으로,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은 숙취에서 깨어나는 두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쓰라림과 망연함이 동반되었다. 나는 항상 그때까지 명함첩에 품고다니던 그녀의 명함판 사진을 내밀었다. ‘…그래 그럼 이 사진도 이제는 너에게 돌려주어야겠지?’ 그녀는 아무말 없이 사진을 받아들고는 나에게 나가자고 눈짓했다. 둘이서 걷다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평소에 꺾어지던 모텔골목을 바라다 보았다. 그녀는 웃으면서 영화나 보자고 하며, 예전처럼 팔짱을 꼈다. 비디오방에 들어서서 맨 구섞방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규제가 되어있질 않아 온 방안이 밀폐된 그 장소가 그녀와 마지막으로 섹스한 곳이었다. 하얀색 정장차림에 바지도 하얗게 입고 나온 그녀였지만 그녀는 역시 달랐다. 영화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바지를 내리고서 그녀는 내위에 올라타라는 내 부탁을 듣지않고 내 옆에서 그 탐스런 엉덩이를 뒤로 지그시 내밀었다. 그녀의 조갯살은 항상 따스하고, 뜨거웠다. 뜨거운 핫팩을 자지에 두른듯한 느낌으로 나는 항상 사정조절이 어려웠다. 콘돔도 없이 나는 다시는 못볼 것 같은 그녀의 둔부를 사정없이 움켜 쥐면서 내몸을 그녀에게 쳐박았다. 그녀도 나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세레나데처럼 그 하이톤의 신음소리를 마음껏 뿜어내고… 나는 이제 책임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그녀의 안에 콘돔도 없이 사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말이 없이 섹스가 끝난 후에, 그녀는 나를 껴안고 몇분을 그렇게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그날 그녀와 나는 시간을 끊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전화를 했다.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겠니?’ 나는 치사한 미련의 수도꼭지였다. 그녀는 대답했다. ‘제가 00씨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걸 잘 아시면서… …….그 말을 꼭 이렇게 듣고 싶으세요?’ 말이 끊어졌었던 그 사이, 나는 희미하게나마 울먹이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나마 내가 멍청한 놈으로 전락되어 스스로 그녀와의 정을 끊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질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커다랗고 공허해 보였다. -5부:내 모습을 남겨두겠니?-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는다. 그당시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의 주제가를 불렀던 김민기라는 드러머의 앨범에 있던 노래. ‘너를 닮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흐린 모습을 얼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얘기할 수 있을까? 너의 그 모습이 내 눈속에 흩어져 버려도 소중한 건 모두 가슴에 남아 그것으로 난 견딜 수 있겠지. 내모습을 남겨두겠니? 식어버린 마음 한곳에 어느날 스쳐갈지도 모르는 그대 모습이 너무 외로워 내가 바라는 사랑이란 사는동안 할 순 없겠지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아픈 지난 추억이기에. 지난 추억이기에.’ 그랬다. 노래가사처럼 지난 추억이라도 그녀의 뇌리속에 남겨지고 싶었다. 이제는 분당인가 일산쪽으로 이사갔다고 전해들었지만 그녀를 찾을 용기는 없다. 그저 지난 추억속의 한남자일 뿐인데 그것이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